- 신근우님의 이글루에서 부터
난 항상 MAC OS X를 꿈꾸고 있다.
항상 늘, 어릴적 잠깐이나마 가지고 놀던 MAC Classic 에 대한 아련한 추억일지도 모른다.
항상 낯익어있던 지금의 콘솔화면의 DOS에서, Windows 3.1보다 화려한 Mac OS는 어린 나에게 충격
이었고, GUI상에서 구동되는 사운드 라던지 멀티미디어 능력은 나를 감동받기에 충분하게 해주었다.
물론 2byte체계가 아니어서 내가 좀 더 몰두할 수 있는건 아니었지만, 재밌는 경험이었고, 내가 MAC에
관심을 가지게 해주었다.
그때가 어언 12년전.
2003년, 아빠의 사무실에서 DTP용 솔루션을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비록 나는 그때도 Windows 2000과 함께하는 MS세상이었지만. 나는 과감히 말했다.
아버지. PowerMAC 2Ghz Dual Processor를 지르소서. 애플 시네마 디스플레이도 같이 지르시면 아주
좋으실듯 하오.
아버지는 내 조언을 따랐고, 한대를 시험적으로 질렀다. 물론 Quark와 Adobe의 모든 솔루션도 같이.
난 너무나 부러웠다. 사실, 항상 난 컴퓨터에 대해서 궁핍했었고, 잦은 업그레이드도 이뤄지지 않았고
이런것이었다. 남들보다 더 적은 업그레이드 기회속에서 난, 아빠의 주머니를 열기위한 설득의 일환으로
남들은 얼마를 주고 사는데 난 그거보다 적은 비용으로 남들의 그것보다 나은 PC를 만들어 낼 수 있다.
나에게 돈만 줘라.
사실, 나는 컴퓨터를 학원 이라던가, 강사와 교재가 구비된 상태에서 교육을 받은것은 96년이 마지막이다.
92년부터 96년까지가 내가 제대로 받은 컴퓨터 교육이랄까, 그런것이다.
아하. 97년부터 99년까지, 학교선생님에 얽메여 Basic에 휘둘린적이 있었지. 하기 싫어서 도망가고, 맞고
그랬었다.
(당시에 Sun Ultra 10 series가 얼마나 대단해보이던지, BNC케이블이 아닌 UTP로 이뤄진 네트웍도 대단
하다고 생각했었다. Cisco의 Catalyst시리즈 스위치/라우터에 대한 막연한 동경도 있었다. 초등학교의 95년당시 486pc들은 BNC케이블로 이뤄진 노벨 넷트웍 기반이었던 것이다.)
하여간, 이야기가 샜다.
내가 컴퓨터를 좀 더 스스로 연구하고 배웠던것은, 그저, 한가지였다. 남들보다 딸리는 하드웨어를, 소프트
웨어적으로 어떻게 보완하여 좀 더 원활하고 그럴듯하게 보이게 쓰는것인가?
항상 나는 하드웨어를 유지보수 한계점까지 유지시키며 고장나면 그때야 부품을 갈고, 교체하고.
그 전까진 120%활용을 하려 노력을 하고. 그랬었다. 무진 애를 썼었지.
그런 나에게 맥은 사치였다.
감히 이야기도 꺼내보지 못할 그런것이었고, 그저 쓸만한 윈도우 데스크탑이 있기라도 한다면 나는 황송
했다. 항상 셀러론이나 AMD(96-98년 정도의 AMD는 메인스트림 이라기보다는 마이너의 개념이
아니었나 싶다.)에 만족을 했어야 했다.
이제는 나이도 들고, 금전적인 문제도 조금은 해결이 되가고 있다.
무엇보다도, 맥이 접근할 수 있을만한 가격에 위치해있다.
학생에겐 할인도 해주고, 조금만 내가 스스로 노력해도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섰다.
이제는 결단이 필요하다.
- 아직은 수정중이지만 - 윈도우 중심의 이 한국 넷 세상으로부터, 당장 나의 블로그부터, 웹표준을 조금
이나마 뒤져보며 어느 브라우저에서든지 열리게 노력을 하고 있고, 내가 윈도우에서 하던 일을 맥에서
똑같이 할 수 있을까 하는데 연구를 하게 되었다.
우선 그 부담을 크게 덜어준것이 오피스 2004 for MAC.
게다가, 맥은 나에게 윈도우에서는 불가능했던 많은 기회를 준다고 손짓하고 있다.
Keynotes, Appature. 어서 오라고 나에게 손짓하고 있다.
반년만 참자. =_=. 맥을 지르자 =_=!
우선 용기를 내고 먼저 Mac으로 switching 한 ringo씨가 고맙다. 그리고 나에게 IT Tech적으로 도움을
주는 근우형이나 컴퓨터랩의 일원들이 좋다.
난 영락없이 컴퓨터에서 빠져나올 수 가 없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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